전문예술인 지지 못 받는 ‘예술인복지법’( 일요신문(www.liyo.co.kr)-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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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예술인 지지 못 받는 ‘예술인복지법’

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등록 제도 개선 필요

 

오는 11월이면 예술인복지법 시행 및 예술인문화재단 설립 10주년을 맞는다. 예술인복지법 제정은 2011년 1월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었던 최고은 씨가 생활고로 사망한 사건이 그 계기가 됐다. 32세 최 씨가 숨을 거두기 직전 이웃집 문에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서 그러는데 남은 밥과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를 붙여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외신에도 보도돼 국제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회장

당시 세계 경제 10위권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여론이 비등했다. 국회가 예술인복지법을 신속히 제정했고, 1년 뒤인 2012년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법 제2조에 ‘예술인이란 예술 활동을 업(業)으로 하여 국가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데 공헌하는 사람으로서 문화예술 분야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창작, 실연(實演), 기술지원 등의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이 법을 근거로 예술인복지재단도 곧바로 설립됐다. 예술인들은 ‘이제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겠구나’ 하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술인복지재단이 진정한 예술인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법 규정에 나와 있는 예술인을 국가가 예술활동증명 서류만으로 선정한 때문이다. 더군다나 예술인복지법 시행규칙을 보면 예술활동증명 기준 자체가 너무 느슨하다. 한국예총이나 민예총의 예술인 선정 기준에 훨씬 못 미친다. 지방자치단체나 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 회원도 가입할 수 있을 정도다. 취미를 살리기 위해 문화센터 강좌에 참여한 뒤 전시회에 몇 번만 참가해도 예술 활동 증명서 발급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예술동호인이나 예술애호가가 하루아침에 얼마든지 예술인으로 둔갑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이 증명서는 각종 혜택을 받는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처럼 예술인이 되기 쉬운 나라가 과연 있을까 싶다. 개인적 취미활동과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우는 열정을 어떻게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 그 발상에 기가 막힐 정도다. 예술인을 위한 지원금이 예술동호인 지원금으로 전락해도 막기가 어렵다. 한 마디로 현 시스템에서는 제대로 된 예술인 지원은 사실상 난망일 수밖에 없다. 이러니 한국예총이나 민예총 회원 대부분은 아예 가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가 정부기관에서 예술인을 직접 선정하고 관리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게다가 재단 운영에 예술인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동안 예술인복지법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재단 운영에 예술인 의사가 반영될 근거는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예술 관련 단체나 예술인 지원조직에 예술인을 반드시 일정 비율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이 대표적이다. 예술인의 창의력과 열정이 문화소비자인 시민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공익적 행위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예술인 지원을 보편적 복지 개념 수준에서 접근하고 있다. 예술 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은 예술인이라는 식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예술동호인이나 예술애호가는 예술생산자라기보다는 예술소비자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려온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게 주요 원인이다. 이러니 예술인복지재단은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 출신의 재취업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한 젊은 예술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시대적 요청을 탁상행정이 변질시켜버린 대표적 사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예총은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았다. 산하 회원단체가 건축가협회, 국악협회, 무용협회, 문인협회, 미술협회, 사진작가협회, 연극협회, 연예예술인총연합회, 영화인총연합회, 음악협회 등 10개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예술단체들이 다 모여 있다. 이들 회원을 합하면 100만 명에 육박한다. 60년이 된 대한민국의 대표적 예술단체인 한국예총과는 한 마디 협의도 없이 자신들 입맛대로 예술인을 선정하고 있다. 과연 이런 행위가 얼마나 타당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라. 2021년 2월 현재 ‘예술 활동 증명 완료자 10만 명 돌파’라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게재되어 있다. 마치 예술인을 위해 대단한 성과를 낸 것처럼 말이다. 이들 가운데 한국예총이나 민예총 회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예술인복지재단은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예술동호인이나 예술애호가인지 아닌지는 예술인이 가장 잘 안다. 연극인은 단 하루의 공연을 위해서도 몇 달씩 연습에 매달린다. 이런 노력을 서류만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화가나 문인은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년, 아니 평생을 몰두하기도 한다. 이러한 산고(産苦)를 전시회 몇 회, 문예지 발표 몇 회라는 규정으로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영혼을 불사르는 창작열은 외면한 채 공연이나 전시 증명서만으로 예술인을 판정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예총과 민예총의 소속단체 정회원을 예술인 기준으로 정하여 등록이 인정되는 규정이 시급히 요구된다.

예술인을 위한 법과 재단이라면 예술인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원칙이다. 예술인 판정 기준도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재단 운영이 설립 취지에 맞게 이뤄질 수 있다. 필요하다면 예술인복지법도 이런 점을 감안해 재개정해야 한다. 법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면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서라도 신속히 고쳐나갈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대로라면 또 다른 최고은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범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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